Home [ 한자(漢字) ]

성씨정보 - 기초한자(基礎漢字)
성씨정보 - 천자문(千字文)
성씨정보 - 사자소학(四字小學)
성씨정보 - 고사성어(故事成語)
성씨정보 - 한자 숙어(熟語)
성씨정보 - 잘못읽기쉬운한자
성씨정보 - 한글 로마자 표기
성씨정보 - 전국 주소(동읍면)의 한자

 

[ www.Surname.info ] 

성씨정보 홈 > 교육 & 한자 >   [ BitMall.kr/home 비트몰홈 ]  

비트몰 쇼핑몰로 이동합니다

  [www.Bitinfo.KR]

성씨정보 홈 > 교육/한자 > 중급 한자 > 통감절요(通鑑節要)

 

통감절요
(通鑑節要)

 제1편

 제2편

 제3편

 제4편

 제5편

 제6편

 제7편

 제8편

 제9편

 제10편

 제11편

 제12편

 제13편

 제14편

 제15편

 제16편

 제17편

 제18편

 제19편

 제20편

 제21편

 제22편

 제23편

 제24편

 제25편

 제26편

 제27편

 제28편

 제29편

 


 

통감절요(通鑑節要) 17

 


始皇의 長子扶蘇가 諫曰 諸生이 皆誦法孔子거늘 今上이 皆重法繩之하시니

(진)시황의 장자 부소가 간하여 말하기를 여러 선비가 모두 공자의 말씀을 외고 본받거늘 지금 임금께서 모두 무거운 법률로 얽어매니


臣은 恐天下가 不安할까 하나이다. 始皇이 怒하여 使扶蘇로 北監蒙恬軍於上郡하다.    

신은 천하가 불안해질까 두렵습니다. 시황이 성을 내어 부소로 하여금 북쪽에 가 상군에서 몽염의 군대를 감독하게 했다.


三十七年이라. 冬十月에 始皇이 出遊할새 左丞相斯가 從하고 少子胡亥가 最愛러니 請從이거늘 上이 許之하고

37년이라. 겨울 시월에 시황이 지방을 돌아볼 때 좌승상 이사가 따라가고 어린 아들 호해가 가장 사랑을 받더니 따라가기를 청하거늘 임금이 허락하고


西至平原津而病하여 秋七月丙寅에 始皇이 崩於沙丘平臺거늘 丞相斯가 爲上崩이 在外라 恐諸公子及天下有變일까 하여

서쪽으로 평원진에 이르러 병이 나서 (다음해) 가을 칠월 병인 일에 시황이 사구 평대에서 죽거늘 승상 이사가 임금이 밖에서 죽었기 때문에 여러 공자와 천하에 변란이 있을까 두려워하여  

  

乃秘之不發喪하고 獨胡亥趙高及幸宦者五六人이 知之더라. 趙高가 乃與丞相斯로 謀하고 詐爲受始皇詔라 하여

이에 그것을 감추어 발상하지 않고 홀로 호해와 조고 및 환관 오륙인이 그것을 알았다.  조고가 이에 승상 이사와 더불어 모의하여 시황의 명을 받았다고 속여서          


立胡亥爲太子하고 更爲書賜扶蘇하여 數以不能闢地立功하여 上書誹謗이라 하고 將軍恬은 不矯正하니 知其謀라 하고 皆賜死한대

호해를 세워 태자로 삼고, 다시 글을 써서 부소에게 주어 능히 땅을 개척하고 공을 세우지 못하고 글을 올려 비방하기를 자주했다 하고, 장군 몽염은 (이를) 바로잡지 못했으니 그 꾀한 바를 알겠다고 하여 모두 죽음을 내리니


扶蘇가 自殺이거늘 胡亥가 至咸陽하여 發喪襲位하고 九月에 葬始皇於驪山下하다.

부소가 자살하거늘 호해가 함양에 이르러 상례를 시작하고 황제 자리를 이어받아 구월에 시황을 여산 아래에 장사지냈다.


元年이라. 春에 二世가 東行郡縣하고 夏至咸陽하여 謂趙高曰 人生世間이 譬猶騁六驥過決隙也라 吾欲悉耳目之所好하고 窮心志之所樂하여 以終吾年壽하노니 可乎아.

(이세 황제) 원년이라. 봄에 이세가 동쪽으로 군현을 순행하고 여름에 함양에 돌아와서 조고에게 말하기를, 사람이 세상에 나서 사는 것이 비유컨대 여섯 마리 준마를 몰아 터진 틈을 지나감과 같으니 나는 눈과 귀가 좋아하는 바를 다하고 마음이 즐거워하는 바를 다하여 내 나이를 마칠까 하노니 되겠는가?


趙高가 曰 陛下가 嚴法而刻刑하사 盡除先帝之故臣하시고 更置陛下之所親信則高枕肆志寵樂矣리이다.

조고가 아뢰되, 폐하께서 법을 엄하게 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하여 선제의 옛 신하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다시 폐하의 친하고 미더운 신하를 두게 되면 베개를 높이하고 뜻을 마음대로 펴서 사랑하고 즐길 것입니다.


二世가 然之하여 乃更爲法律하여 務益刻深하니 大臣諸公子라도 有罪면 輒僇死더라. 復作阿房宮할새 盡徵材士五萬人하여 屯衛咸陽하다.

이세가 그렇게 생각하여 이에 다시 법률을 바꾸어 더욱 가혹하게 하니 대신과 여러 공자라도 죄가 있으면 바로 죽이더라. 다시 아방궁을 지으니 재사 5만인을 모두 불러서 함양에 머물러 지키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