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十四年이라. 丞相李斯가 上書曰 異時에 諸侯가 並爭하여 厚招遊學이러니 今天下가 已定에 法令이 出一하니
(진시황) 34년이라. 승상 이사가 글을 올려 아뢰기를, 다른 때에는 제후들이 돌아다니는 학자를 나란히 다투어 후하게 초빙하더니 지금은 천하가 이미 안정되어서 법령이 하나로 통일되어 나오니
百姓이 當家則力農工하고 士則學習法令이거늘 今諸生이 不師今而學古하여
백성이 마땅히 집에서는 곧 농사짓고 물건 만드는 일에 힘쓰고 선비가 되면 법령을 배워 익혀야 하거늘 지금 여러 선비들이 지금(의 일)을 배우지 않고 옛일을 배워서
以非當世하고 惑亂黔首하며 相與非法으로 敎人하여 聞令下則各以其學으로 議之하고
(그것으로)써 당세를 비난하고 (검은 머리의) 백성을 미혹시켜 어지럽히며 서로 더불어 법이 아닌 것으로 (불법으로) 사람들을 가르쳐서 명령이 내려온 것을 들으면 각각 그 배운 것으로써 의논하고
入則心非하며 出則巷議하여 誇主以爲名하고 異趣以爲高하여 率羣下以造謗하니
(집에) 들면 마음으로 비난하며 나면 거리에서 의논하여 주장을 과장하면 이름 있다고 하고 취향을 달리 하면 고상하다고 하여 무리의 아래 사람들을 거느리고 헐뜯기를 지어내니
如此弗禁則主勢가 降乎上하고 黨與가 成乎下이니 禁之便하니이다. 臣은 請史官이 非秦記거든 皆燒之하고
이와 같음을 금하지 아니하면 주장하는 형세가 임금님에게 닥치고 그 무리들이 아래에서 (세력을) 이룰 것이니 금하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신은 청컨대 사관이 진나라의 기록이 아니면 모두 불살라 버리고
非博士官의 所職이오 天下에 有藏詩書百家語者거든 皆詣守尉하여 雜燒之하고
박사의 벼슬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서 천하에 시와 서와 제자백가의 책을 감추어 둔 사람이면 모두 고을 태수에게 나아가 (책을 바쳐서) 섞어 불살라 버리고
有偶語詩書者거든 棄市하고 以古非今者는 族하고 所不去者는 醫藥卜筮種樹之書요 若欲有學法令이거든 以吏爲師라 한대 制曰可라 하다.
시와 서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있으면 저자 거리에서 죽이고 옛일로써 지금을 비난하는 자는 그 일족을 죽이고,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의약에 관한 책과 점치는 책과 나무 심는 법에 관한 책이요 만약 법령을 배우고자 하는 이가 있으면 벼슬아치를 스승으로 삼게 하십시오. 하니 (진시황이) 명령하되, “좋다.”라고 했다.
三十五年이라. 使蒙恬으로 除直道하되 道九原하여 抵雲陽하고 塹山堙谷하니 千八百里라 數年不就하다.
(진시황) 35년이라. 몽염을 시켜 곧은길을 만들어 구원을 거쳐 운양에 이르고 산을 파서 골을 메우니 천 팔백리라 여러 해 동안 이루지 못했다.
始皇이 以爲咸陽이 人多하고 先王之宮庭이 小라 하여 乃營作朝宮渭南上林苑中할새 先作前殿阿房하니
진시황이 함양에 사람이 많고 선왕의 궁궐이 작다고 생각하여 조회하는 궁전을 위수 남쪽 상림원 속에 지었는데 먼저 앞 궁전 아방궁을 지으니
東西가 五百步요 南北이 五十丈이라 上可以坐萬人이요 下可以建五丈旗더라.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가 오백 걸음이요 남쪽에서 북쪽이 쉰 길이라. (궁전) 위에는 만 사람이 앉을 만하고 (궁전) 아래에는 다섯 길의 깃발을 세울 만하더라.
周馳爲閣道하여 自殿下로 直抵南山하고 表南山之顚하여 以爲闕하고 爲複道하되
두루 (난간이 있는) 각도가 뻗어있어 궁전 아래로부터 곧바로 남산에 이르고 남산의 꼭대기에다 궁궐을 지어 (황제만 다닐 수 있는) 복도를 만들었는데
自阿房으로 渡渭하여 屬之咸陽하니 以象天極閣道가 絶漢抵營室也더라.
아방궁으로부터 위수를 건너서 함양에까지 이어졌으니 (하늘의 별인) 천극 각도가 은하수를 가로질러 영실(별 이름)에까지 이른 것을 본뜬 것이라.
隱宮徒刑者가 七十餘萬人이라. 乃分作阿房宮하며 或作驪山할새 發北山石槨하고 寫蜀荊地材하여 皆至하니
궁형(거세형)을 받고 노역하는 자가 70여만 명이라. 이에 (이들을) 나누어 아방궁을 지으며 혹은 여산을 만들새 북산의 석곽 재료인 좋은 돌을 캐내고 촉과 형주의 흙 재료들을 옮겨서 모두 이르게 하니
關中에 計宮이 三百이요 關外에 四百餘라. 於是에 立石東海上朐界中하여 以爲秦東門하고
관중에 궁궐을 헤아리면 3백 개요 관 밖에 4백여 개라. 이에 동해 위의 구라는 곳의 경계에 돌을 세워서 진나라의 동문으로 하고
因徙三萬家驪邑하고 五萬家雲陽하여 皆復하고 不事十歲하다. 侯生盧生이 相與譏議始皇하고 因亡去거늘
인하여 3만가를 동원하여 (진시황의 능을 만드느라) 여읍으로 옮기고, 5만가를 동원하여 (감천궁을 만드느라) 운양으로 옮겨서 (완성 후에) 모두 돌아가게 하고 10년 동안 부리지 않았다. 후생과 노생이 서로 더불어 진시황을 의논하여 기롱하다가 그로 인해 도망하여 달아났거늘
始皇이 聞之하고 大怒曰 盧生等을 朕이 尊賜之甚厚거늘 今乃誹謗我로다.
진시황이 그것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존경하고 준 것이 매우 많거늘 이제 와서 나를 비방하는구나.
諸生이 在咸陽者를 吾가 使人廉問하니 或爲妖言하여 以亂黔首라 하고 於是에 使御史로 悉按問諸生하니
함양에 있는 여러 선비를 내가 사람을 시켜 어떤 사람이 요망한 말을 하여 백성들을 어지럽히는지 살펴 검문할 것이라 하고 이에 어사를 시켜 여러 선비들을 모두 살펴 검문하니
諸生이 傳相告引하여 乃自除犯禁者四百六十餘人이라 皆坑之咸陽하다.
여러 선비가 연락하여 서로 알리고 끌어들여서 이에 범하지 말라고 금지한 것을 스스로 어긴 사람이 4백6십여 명이라 모두 함양에다 파묻어 죽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