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홍유(儒)는 후고구려(태봉)의
궁예(弓裔)가 왕위에 즉위한지 몇년만에 처자식을 살해하고 백성을 혹사하는
등 폭정이 날로 심해지자 당시 동료 기장이었던 신숭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 배현경(裵玄慶) 등과 함께 궁예(弓裔)를 추출하기로
하고 왕건에게 왕창근, 송합홍 등 점술가의 예언을 설명하면서 거사를
권하여 왕건을 고려 태조로 옹립하여 '고려사'에 고려 개국 4공신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홍유(儒)는 남양홍씨(당홍)의 시조
홍은열과 동일인으로 추측하고 있다. 당홍측에 의하면, 시조 홍은열의
초명은 유(儒), 자는 술(術)인데,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웠으므로 ‘은(殷)나라의
부열(傅說, 중국 은나라 고종 때의 명재상)과 같다’는 뜻에서 태조로부터
은열(殷悅)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확인할 길은
없다. 남양 홍씨(당홍)와 합본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