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 |
왕명 |
휘(諱) |
재위기간 |
약사 |
1 |
온조왕 (溫祚王) ?~28 |
온조 (溫祚) |
B.C 18 ~A.D 29년 |
고구려 동명왕의 세째아들(혹은 둘째). 위례성(慰禮城)에
나라를 정하고 나라이름을 백제(百濟)라하였다. BC 5년에 서울을 한산(지금의 광주(廣州))으로
옮김. AD 8년 마한을 병합하였다. |
2 |
다루왕 (多婁王) ?~77 |
다루 (多婁) |
28~77년 |
온조왕의 아들. 말갈족을 격퇴하고, 농사를 장려하여
백성 생활을 안정 시켰다.. 37년 후한의 낙랑군을 멸망시켰다. |
3 |
기루왕 (己婁王) ?~128 |
기루 (己婁) |
77~128년 |
다루왕의 맏아들. '삼국사기'의 기루왕 치세에
대한 내용에는 천문이변, 지진, 큰 가뭄, 태풍, 기상이변 등에 대한
간략한 기록이 대부분이다. |
4 |
개루왕 (蓋婁王) ?~166 |
개루 (蓋婁) |
128~166년 |
기루왕의 아들. 132년에 북한산성을 쌓음 |
5 |
초고왕 (肖古王) ?~214 |
초고 (肖古) |
166~214년 |
개루왕의 맏아들로 소고왕(素古王) 또는 속고왕(速古王)이라고도
불렸다. 신라를 여러번 침공하고, 210년에 적현성(赤峴城), 사도성((沙道城)을
축조함. |
6 |
구수왕 (仇首王) ?~234 |
구수 (仇首) |
214~234년 |
초고왕의 맏아들. 가뭄과 홍수를 대비하여 둑을
쌓고 농사를 장려함.귀 수왕. |
7 |
사반왕 (沙泮王) ? |
사반 (沙伴) |
234년 |
구수왕의 아들. 즉위하였으나 나이가 어려 바로
폐위됨. 사비왕(沙沸) |
8 |
고이왕 (古爾王) ?~286 |
고이 (古爾), 구이 (久爾), 고모 (古慕) |
234~286년 |
초고왕 동생. 관제를 제정하고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여 고대국가의 기초를 확립함. |
9 |
책계왕 (責稽王) ?~298 |
책계 (責稽) |
286~298년 |
고이왕 아들. 298년 한군(漢軍, 낙랑의 군대)과
맥인(貊人, 동예로 추정됨)의 침입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
10 |
분서왕 (汾西王) ? |
분서 (汾西) |
298~304년 |
책계왕 아들. 낙랑군의 서현을 점령하여 영토를
확장하였으나, 낙랑군의 자객에게 살해당함. |
11 |
비류왕 (比流王) ?~344 |
비류 (比流) |
304~344년 |
구수왕의 둘째 아들. 민간의 형편을 잘알아
선정을 베풀었다고 함. |
12 |
설왕( ) 계왕(契王), ?~346 |
계(契) |
344~346년 |
분서왕의 맏아들 |
13 |
근초고왕 (近肖古王) ?~375 |
초고 (肖古), 여구 (餘句) |
346~375년 |
비류왕의 아들. 369년에 마한과 대방을 병합했다.
고구려 평양성을 점령하고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아직기(阿直岐), 왕인(王仁)을
일본에 파견하여 한문을 전파하고, 박사 '고흥'에게 백제의 국사 '서기(書記)'를
쓰게 했다. |
14 |
근구수왕 (近仇首王) ?~384 |
구수 (仇首), 수(須) |
375~384년 |
근초고왕의 큰아들. 휘수(諱須)
일본과 국교를 맺어 문물을
보급시키는 데 공이 많음. |
15 |
침류왕 (枕流王) ?~385 |
침류 (枕流) |
384~385년 |
근구수왕의 아들. 불법(佛法)을 시행하고, 한산에
절을 창건하였다. |
16 |
진사왕 (辰斯王) ?~392 |
침류 (枕流) |
385~392년 |
침류왕의 동생. '광개토대왕'에게 한강 이북을
빼앗기자 이를 찾기 위해서 출정하다가 병사했다. |
17 |
아신왕 (阿莘王) ?~405 |
아신 (阿莘) |
392~405년 |
침류왕의 아들.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모두 패함.
일본과 화친하여 태자를 볼모로 보냄. 아방왕, 아화왕. |
18 |
전지왕 (琠支王) ?~420 |
전지 (腆支), 여영 (餘映), 여전 (餘腆) |
405~420년 |
아신왕의 아들.
왕비는 팔수부인(八須夫人)으로서 해씨(解氏)집안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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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구이신왕 (久爾辛王) ?~427 |
구이신 (久爾辛) |
420~427년 |
전지왕의 맏아들(일설에는 비유왕이 전지왕의 서자라 한다.)
구이신왕은 중국대륙의 세력과 연결하여 백제가 장악한 황해연안의 해상무역권을 유지하고, 또한 팽창하는 고구려세력에 대처하려 하였다.
그것은 그전부터 형성된 백제와 남조(南朝)의 송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것으로 전개되었다.
구이신왕은 423년과 425년에 송나라에 사신을 파견했고, 송나라로부터 진동대장군(鎭東大將軍)의 칭호를 받았다.
|
20 |
비유왕 (毘有王) ? |
비유 (毗有), 여비 (餘毗) |
427~454년 |
구이신왕의 아들. 송나라와 왕래하고 신라와
화친을 하는등 외교를 통한 친선에 힘을 씀. |
21 |
개로왕 (蓋鹵王) ?~475 |
경사 (慶司) |
455~475년 |
비유왕의 맏아들. 고구려
장수왕의 습격을 받아 피살됨. 피살됨으로 수도의 한성시대를
마감. |
22 |
문주왕 (文周王) ?~477 |
모도 (牟都), 여도 (餘都) |
475~477년 |
개로왕의 아들. 수도를 웅진(熊津, 공주)으로 옮기고
국방에 힘씀. 병관 좌평 해구(解仇)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살해됨. |
23 |
삼근왕 (三斤王) ? |
삼근 (三斤) |
477~479년 |
문주왕의 맏아들. 13세로 즉위 반란을 일으킨
해구를 진로(眞老)로 하여금 토평하게 함. |
24 |
동성왕 (東城王) ?~501 |
모대 (牟大), 마모 (摩牟), 마제 (麻帝), 여대 (餘大) |
479~501년 |
이름은 모대(牟大). 삼근왕의 동생. 493년에
신라와 혼인 동맹을 맺고,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와 싸움. |
25 |
무령왕 (武寧王) ?~523 |
사마 (斯麻) |
501~523년 |
동성왕의 둘째 아들 또는 개로왕 아들. 국내안정에
힘을 쓰고, 쌍현성을 쌓아 외침에 대비함. |
26 |
성왕 (聖王) ?~554 |
명농 (明膿, 明襛) |
523~554년 |
무령왕의 아들. 538년 웅진(熊津)에서 사비(泗沘)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南夫餘)라 함. 554년 신라를 공격하였으나 관산성(管山城)에서 전사함. 성명왕. |
27 |
위덕왕 (威德王) ?~598 |
창(昌) |
554~598년 |
성왕의 맏아들. 고구려의 침공을
막고 중국과 외교관 계를 수립하고, 신라를 자주침. 창왕(昌王) |
28 |
혜왕 (惠王) ?~599 |
계(季). |
598~599년 |
성왕의 둘째 아들. 위덕왕의 아들로 즉위하였다가 이듬해에
죽음. 헌왕(獻王). |
29 |
법왕 (法王) ? |
선(宣) 효순 (孝順) |
599~600년 |
혜왕의 아들. 불교를
신봉하여 살생을 금하고, 왕흥사의 창건을 착수함. |
30 |
무왕 (武王) ?~641 |
장(璋) 무강 (武康) 서동 |
600~641년 |
위덕왕의
아들. 수, 당나라와 화친을 맺고, 불교을 숭상하여
미륵사지 건설, 일본에
중 관륵(觀勒)을 보내어 천문, 지리, 역본(曆本) 등의 서적과 불교를
전파하였다. |
31 |
의자왕 (義慈王) ?~660 |
의자 (義慈) |
641~660년 |
무왕의 맏아들.
효성과 형제애가 지극하여 해동증자(海東曾子)라한다. 642년 신라를 공격하여 많은
영토를 얻었다. 만년에는 사치와 방탕에 흘러 660년
'나당연합군'의 침공을 맞게되어, 계백(階伯)의 '황산벌싸움'을 마지막으로 백제의 방어선이 모두 무너져 끝내 항복함.
그후 소정방(蘇定方)에게
끌려 당(唐)나라에 압송되었다가 병사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