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윤시영(始榮)은 신라 무열왕
때 태자태사(太子太師)로서 고명(顧命) 원로(元老)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의 아들 윤황 이후의 기록은 없어서 알 수가 없고,
고려시대에 칠원백, 호장을 지낸 윤거부를 1세 조상, 중시조로 하고
있다. 그의 17세손인 윤길보(시호는 충의)가 구성군에 봉해지고
후손들이 칠원군에 살면서 본관을 칠원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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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윤수(秀) : 고려 충렬왕 때 군부판서(軍簿判書),
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을 지냈다. 윤저(抵)
: 윤수의 증손. 조선 태조 때 상장군이 되고 제2차 왕자의 난 때 태종을
도와 좌명공신 3등에 책록, 찬성사가 되었다. 윤석보(碩輔) : 옥당(玉堂), 직제학을 지내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윤풍형(豊亨) : 윤석보의 아들. 관찰사, 부제학을 역임하였다.
윤탁연(卓然) : 윤석보의 증손. 명종 때 춘추관기사관으로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고, 옥당, 3도관찰사, 형조, 호조판서를 지냈으며,
선조 때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칠계군에 봉해졌다.
윤지술(志述) : 숙종 때 유생으로
신임사화에서 화를 입었으며, 임창, 이의연과 함께 3포의(三布衣)로
일컬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