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봉 송가원의 아들이다.
     1492년(성종 2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있다가 연산군의 폭정으로 퇴직하고 후진교육에
            전심했다.    1516년(중종 11) 홍문관 정자로 복직된 후 저작 박사
            수찬 정언 병조정랑 지평 등을 역임했다.    그 후 담양 장흥의 부사를
            지내고,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전주부윤으로 전임한 뒤 광주 나주의
            목사, 담양 장흥의 부사를 지냈다.    1534년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으나
            다시 노모를 위해 왕의 특허를 받고 집에 돌아갔으며,    101세를 산 모친을
            봉양, 전후 7회에 걸쳐 효렴으로써 상을 받았다.    1538년 청백리에
            녹선되고,    그 후 한성부 우윤, 이조 졍조의 판서, 우참찬 등을 거쳐
                1543년 판중추부사 겸 지경연사에 이르렀다.
     장성의 수강사(壽岡祠)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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