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관찰사 민광훈(光勳)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1649년(효종 즉위) 정시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성균관·사간원·홍문관의 관직을 두루 거쳤다.
그후
동래부사·전라어사·충청어사 등을 지내고, 1659년 현종 즉위 뒤에는 대사헌·이조판서·한성부윤·의정부참찬 등을 역임했다.
1675년(숙종 1)
숙종이 허적(許積)·윤휴(尹鑴) 등 남인을 중용하자 이조판서로 있던 중 이들의 배척을 받아 장흥(長興)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1680년
경신대출척으로 서인이 정권을 잡게 되자 귀양에서 풀려난 뒤 우의정·좌의정 등을 지냈다.
1689년 희빈장씨 소생문제로 일어난 기사환국에서 남인이
다시 득세하자 되자 벽동(碧潼)에 유배된 뒤 그곳에서 죽었다. 1694년 갑술환국 때 관작이 회복되었다.
효종(孝宗)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
양주의 석실서원(石室書院), 벽동의 구봉서원(九峯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노봉집, 노봉연중설화(老峯筵中說話), 임진유문(壬辰遺聞) 등이
있고, 글씨에도 뛰어나 우상이완비(右相李浣碑), 개심사대웅전편액(開心寺大雄殿扁額) 등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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