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百濟) 때의 무시이군(武尸伊郡, 현재의 영광읍 일대로 추정)
또는 무호이군(武戶伊郡)이나 고록지현(古祿只, 현재의 영광군 염산면과 백수읍 일대로 추정)과 아노현(阿老縣,
현재의 군남면 일대로 추정)
백제가 멸망한 후 당에 의해 모지현(牟支縣; 장성(長城)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으로 바뀌어 사반주(沙泮州)의 영현이 되었다.
통일신라(統一新羅) 때인 757년(경덕왕)에 무령군(武靈郡)으로 고쳤다.
(고창현(高敞縣)은 본래 백제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인데 경덕왕이 명칭을 바꾸어 지금에 이르르며, 무송현(茂松縣)은 본래 백제의
송미지현(松彌知縣)인데 경덕왕이 명칭을 바꾸어 지금에 이른다.)
고려(高麗)
때에는
영광군이 영속하에 있던 속군은 ①압해군(壓海) ②장성군(長城), 속현은 ①삼계현(森溪) ②육창현(陸昌) ③해제현(海際) ④모평현(牟平)
⑤함풍현(咸豊) ⑥임치현(臨淄) ⑦장사현(長沙) ⑧무송현(茂松)의 10군현이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영광군(靈光)으로 개칭. 또는 정주(靜州)라고 하였다. 영광의 부용창(芙蓉倉)(영광 법성포)
조선시대 영광의 행정편제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조운(漕運) 편제속의 영광 법성창의 존재이다. 군현의 하부조직으로 나타나는 것이 면리제(面里制)이다. 면리제(面里制)에서는 읍(邑)의 치소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방위에 따라
면(面)을 분할하는데 이를 방위면(方位面)이라 한다. 영광의 행정적 연혁은 두어차례 현으로 강등당한 경우를 제외하곤 큰 변화가 없었다. 1896년 13도제의 시행으로 인해 전라도가 전라남도와 북도로 분리되게 되었고 영광군은 전라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1955년 영광면을 영광읍(邑)으로 승격하였다.
1962년 위도면을 전북 부안군에 이관하였다. 1967년
낙월면에 안마(鞍馬)출장소를 두었다. 1980년 백수(白岫)면이 백수읍(邑)으로 승격
1985년 홍농(弘農)면을 홍농읍(邑)으로 승격 현재는 영광,
백수, 홍농의 3邑, 대마, 묘량, 불갑, 군서, 군남, 염산, 법성, 낙월의 8面, 안마(鞍馬)의 1 출장소(出張所)를 관할.
1987년 염산면(鹽山面)의 월흥(月興), 반안리(盤安里)가
군남면(郡南面)으로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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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본관(성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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