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저(沃沮)의 중요한 부락이었다.
600년 동안 고구려의 성읍이었다.
668년 신라와 당(唐)나라의 연합군에 의하여 멸망한 뒤에는 당나라의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에 예속되고, 발해가 건국된 뒤에는 발해에 영유되었다.
고려 초까지 여진족(女眞族)이 발호하는 지역이었다.
1107년(예종 2)에 윤관(尹瓘)이 여진을 정벌하고,
1108년 함주대도독부(咸州大都督府)를 설치, 진동군(鎭東軍)을 두었다.
1109년 여진족에게 돌려주었다.
1258년(고종 45) 원(元)나라가 침입하여 합란부(哈蘭府)라 하여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에 예속시켰다.
1356년(공민왕 5) 유인우(柳仁雨)는 이자춘(李子春)의 내응을 얻어 쌍성을 수복하고 함주지사(咸州知事)를 두었다가 함주
만호부(咸州萬戶府)의 영(營)을 두고 목(牧)이라 하였다.
1416년(조선 태종 16) 함흥(咸興)이라 하고 관찰사를 두었다.
1466년(세조 12)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
1470년(성종 1) 관찰사를 영흥으로 옮기고 군으로 강등하였으나 3년 뒤 관찰사 본영을 환원하였다.
1895년(고종 32) 23부제 실시 때 함흥부(咸興府)가 되었다.
1896년 13도제로 개편함에 따라 함경남도 관찰사청(觀察使廳)을 두었다.
1910년에 지방행정개혁에 따라 함흥군(咸興郡) 함흥읍으로서 도청 소재지가 되었다.
1930년에 부제(府制) 실시로 함흥부가 되고, 함흥군의 여타 지역은 함주군이 되었다.
1945년 해방후 함흥면이 함흥부로 승격되었고 나머지는
함흥군은 함주으로 바뀌었다. 또한 함흥부는 다시 함흥시로
흥남읍이 흥남시로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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