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부터 가락국(駕洛國)의 문화(文化) 중심지로 발전하여 오다가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新羅)에 병합되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
그후 문무왕(文武王)이 금관소경(金官小京)을 두었다. 경덕왕(景德王)이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고쳤다.
고려 초기(高麗初期)인 940년(태조 23)에는 김해부(金海府)로 고쳐 임해(臨海) 금주(金州) 등으로 불리웠으며,
1270년(원종 11) 방어사(防禦使) 김원(金 )이 인접지역인 밀성(密城)의난(亂)을 평정(平定)하여 금녕도호부(金寧都護府,
김녕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금주목(金州牧) · 김해부(金海府)로 개칭되었다.
조선(朝鮮) 때 와서는 태종(太宗)이 다시 도호부(都護府)로 고쳤다
세조(世祖) 때 진(鎭)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김해군(金海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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