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시대에 우유국(優由國)이 있었던 것으로 비정되기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삼국 초기 이서소국(伊西小國) 또는 이서국(伊西國) 의 땅이었다. 신라 유리왕(儒理王, 제3대 왕) 때 신라에 병합되었다가 구도성(仇刀城)의 경내(境內) 솔이산성(率伊山城)·경산성(驚山城)·오도산성(烏刀山城)의 3성(城)을 합하여 대성군(大城郡)을 두었다.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와서 구도(仇刀)를 오악현(烏岳縣)으로, 경산(驚山)을 형산현(荊山縣)으로, 솔이산(率伊山)을 소산현(蘇山縣)으로 고쳐 밀성군(密城郡,
밀양)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초에 이들 3현(三縣)을 합하여 청도군(淸道郡)이 되었다.
1018년(현종 9) 밀성군(密城郡)의 속군이 되었다. 1109년(예종 4) 감무(監務)를 파견함으로써
독립했으며, 충혜왕대에 이 고을 사람 김선장(金善莊)의 공로로 청도군(淸道郡)이 되었다가 곧 다시 감무가 파견되었다.
1366년(공민왕 15) 군으로 승격되어 다시
지군사(知郡事)가 파견되는 군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에도 청도군(淸道郡)을 유지했으며, 별호는 오산(鰲山)·도주(道州)였다.
1405년 10도제 실시로 경상도 청도군(淸道郡)이 되었다. 태종 7년에 좌우도로 분할됨에 따라 경상좌도에 속하게 되었다.
1413년 지방제도 개혁에 따라 대구도호부에 속하게 되었고 20년 후에는 다시 밀양도호부로 환원 되었다. 1458년 대구진에 속하였다
1896년 도제실시에 따라 경상북도에 속하게 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대구에 속했던 각북, 풍각, 각초면이 편입되어 17면이
되었다.
1911년 외서면 및 청도면이 밀양군으로 이관 되었으며 밀양군이었던 사촌동이 청도군(淸道郡)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의 통합정리시 각면을 통폐합하여 대성, 화양, 각남, 풍각, 각북, 이서, 운문, 금천, 매전, 종도면등 10개면이 되었으며 고미면의
일부인 지천, 봉하, 정상, 마일동이 운문면에 편입되어 212동으로 되었다. 1919년 대성면이 청도면으로, 종도면은 폐면이 되어 매전,
금천면에 분할 편입되어 9개면이 되었다.
1949년 청도면이
청도읍으로 승격 1979년 화양면이 화양읍으로 승격되어 2읍 7개면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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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읍 [ 청도읍, 화양읍 ] 7면
[ 각남면, 풍각면, 각북면, 이서면, 운문면, 금천면, 매전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