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성은 김해(金海)의 고려 때 지명이다.
가락국(駕洛國)이었다.
신라에 병합되어 법흥왕(法興王) 때 금관국(金官國)이 되었다가 문무왕(文武王)이 소경(小京)을
두었다. 경덕왕(景德王) 때 김해(金海)로 고쳤다.
고려 태조(太祖)가 부(府)로 강등시켜 뒤에 임해현(臨海縣)이 되었으나
성종(成宗) 때
금주(金州)로 개칭되고 원종조(元宗朝)에 와서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가 되었다.
충선왕(忠宣王) 때 다시 김해(金海)로 고쳐
부(府)로
하였다.
조선 태종(太宗)이 이곳에다 도호부(都護府)를 설치다,
세조(世祖) 때 진(鎭)을 두기도 했다. 고종(高宗) 때
군(郡)으로 승격, 1906년 양산군의 2개면을 병합하였다.
1981년 김해시(金海市)로 승격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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