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정선갑(先甲)은 중국 산동성 낭야(瑯揶) 사람으로 
            명(明)나라 말기의 진사(進士)이다.    그는 1644년(인조 
                22) 명나라가 
            북쪽 오랑캐 청나라에게 멸망할 때 나라를 구하고자 의거하려고 하다가 
            청군에게 포로가 되어 심양에 억류되어 있을 때 같은 이유로 포로가 
            된 풍삼사(馮三仕)·황공(黃功) 등 8명의 의사와 만나 뜻을 같이 하게 
            되었다.    병자호란의 인질로 심양에 억류 중인 조선 왕자 봉림대군(鳳林大君, 
                효종)도 
            같은 뜻을 품고 있음을 알고 상호 협력하기로 밀약을 하고 이듬해 봉림대군이 
            귀국할 때 배종하여 우리나라에 왔다.    9의사는 봉림대군의 주선으로 
            지금의 연지동 1번지 부근 황조인촌에 동거하면서 효종과 북벌계획을 
            추진하던 중 효종의 붕어로 북벌계획이 무산되자 귀국을 단념, 그대로 
            귀화하여 동래시조가 되었으며, 후손들이 본향인 낭야(瑯揶)를 본관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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