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온(鄭溫)

 

 

 창왕때 문과에 급제하여 청주목사, 7도감사, 호조전서를 거쳐 사헌대부와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정계가 혼란해지자 관직을 버리고, 당달봉사로 가장하고 두문동을 거쳐 지리산 청학동에 은거하였는데 태조가 중사를 보냈으나 관직을 받지 않았다.
 세인이 포은(圃隱)의 사(死), 야은(冶隱)의 거(去), 우곡의 맹(盲)을 은의 삼인에 비했다.
 경현사, 정강서원에 제향되었다.

 

 

 

 

 진주정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