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6년(선조19)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승문원 부정자로 등용된 뒤 검열 등을 거쳐    1589년 사가독서를 했다.  
              1592년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공을 세웠고 그 후 수찬·정언·교리·사간 
            등에 이어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부제학에 
            발탁되고,    전라도 관찰사·대사헌을 거쳐    1629년 이조판서 겸 대제학에 
            이르렀다.
     성리학에 밝았으며,    예학에도 밝아 김장생(金長生) 등과 함께 예학파로 
            불리었다.
     찬성에 추증,     상주의 도남서원,    대구의 연경서원,    경산의 
            고산서원,    개령의 덕림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우복집(愚伏集) 
                상례참고(喪禮參考) "주문작해(朱文酌解"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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