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이석(碩)은 고려 말 진보 현리(眞寶縣吏)로서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진사(進士)로 있던 중,
맏아들 자수(子修)가 현달하여 봉익대부(奉翊大夫), 밀직사(密直使)에 추증되었다.
조선에서 문과 급제자 58명을 배출하였고, 퇴계(退溪) 이황(滉)이 나왔다.
퇴계는 한국의 성리학을 집대성한 대학자였다. 1534년(중종
29) 문과에 급제, 이후 30여 년 간 중종 ·명종 ·선조의 지극한 예우를
받으며 예조판서 ·대제학 ·우찬성 등을 거쳐 중추부판사를 지내고
벼슬에서 은퇴하였다. 그는 고향에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짓고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다. 그의 숙부 이우( )는
중종 때 관찰사 ·안동부사 등을 지냈으며 형 해(瀣)는 인종 때 예조참판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그의 손자 안도(安道)는 성리학의
대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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