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鄭夢周)의 문인.
문과에 급제하여 사예를 거쳐 군수를 역임했다.
이방원(李芳遠, 태종) 과는 곡산 청룡사에서 함께 학문을 닦고 성균관에도
같이 있었던 관계로 교분이 두터웠다. 또한 태조 이성계(李成桂)에게
여러번 기용되었으나 거절하고 태종 역시 옛벗으로서 그의 절의를 가상히
여겨 그가 숨어 있는 산을 청화산이라 부르고 저택을 하사했다.
또한 그는 임종 때에 스스로 명정에 「고려진사 이양소지구」라 쓰고
숨을 거두었는데 태종이 그의 충절을 포상하여 장지를 지정해 주고 수총군
4호를 두게 했다.
태조가 그 집에 거동(擧動)하여
시주(詩酒)로서 서로 즐기고 곡산군수(谷山郡守)로 제수하자, 소(牛)를 타고 가서 부임한지 3일만에 그만두고 돌아와 은행정(銀杏亭)에서 일생을
마쳤다. 태종이 은행정에 거동하여
「가을비는 반쯤 개고 사람은 반쯤
취했다」는 시를 부르자 그가 화답하기를
「밤빛이 막 동하고 달이 막
떠오르네」하였는데 달이 막 떠오른다고 한
월초생(月初生생)은 태종의 애희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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