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장단(長湍) 출생. 1711년(숙종 37) 사마시에 합격, 1727년(영조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전적(典籍) ·정언(正言)을 거쳐
1728년 경상도 암행어사가 되어 민폐를 없앴다. 1733년 대사간 ·이조참의 ·대사성을 거쳐
다음해 홍문관 부제학이 되어 양역(良役)의 폐를 상소하였다.
1736년 이조판서 때 영조의 탕평책을 반대하여 파직되었다가 재기용되어 경기도관찰사 ·도승지 ·형조판서 등을 거쳐 1744년 재차 이조판서가 되었다.
이어 형조판서 ·대사헌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 등을 거쳐
1752년 영의정에 올랐으나 사직하고 중추부영사(中樞府領事)가 되었다.
성리학에 밝고 문장과 글씨에도 뛰어났다.
장조(莊祖, 莊獻世子)의 묘정(廟庭)에 배향(配享)되었다.
저서에 "오천집(梧川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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