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금위에 등요된 후 1447년(세종 29) 무과에 급제,
길주판관, 군기시 부정 등을 거쳐 남포진, 옥구진의 병마절도사, 이어
함길도 도진무사, 의주목사를 역임했다. 1467년(세조 13) 박충선(朴忠善)과
함께 평안도의 정병을 이끌고 이시애의 난(李施愛-亂)을 평정하는 데 공이
있어 적개공신 2등(敵愾功臣 二等)으로 가평군(加平君)에 봉해졌다. 이어 전라도,
부절제사 겸 전주부윤을 지내고, 공주, 청주의 목사를 거쳐 1492년(성종
23) 우림위장이 되었으며, 이어 부총관을 겸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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