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홍순목(淳穆)의 아들이다.
1873년(고종 1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규장각의 정자(正字) ·대교(待敎)를 지냈으며,
1881년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의 일원으로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와서 통리기무아문 부경리사가 되었다. 이듬해 부제학을 거쳐 참의통리 내무아문사무(內務衙門事務) ·참의군국사무 ·참의교섭통상사무를 역임, 1883년 협판(協辦)교섭통상사무를 지내고 전권부대신(全權副大臣)으로 미국에 다녀왔으며, 1884년
병조참판(兵曹參判)이 되었다.
개화당(開化黨)의 중진으로서 신설된 우정국(郵征局)의 총판(總辦)이 되어 그 개국 축하연을 계기로 김옥균(金玉均), 박영효(朴泳孝), 서광범(徐光範),
서재필(徐載弼) 등과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켜 사대당(事大黨)을 제거, 신정부를 조직하고 우의정이 되었다. 그러나 청나라의 개입으로 3일천하로 신정부가 무너지자 대역죄로인해
청군에게 처형되었다. 또한 이 사건으로 인해 아버지인 홍순목(淳穆)은
자살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원되었고 대제학(大提學)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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