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0년(조선 중종 5)에 삼포(三浦)에 살던 일본인들이
일으킨 폭동.
삼포(三浦)를 연 뒤 일본인들의 무역과 거주가 허가되자
삼포(三浦)의 일본인 수가 점점 늘어갔고, 교만해진 일본인들은 조정의 명령을
어기고 관리와 충돌하는 등 그 폐단이 심해졌다. 그리하여 중종은
그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쓰시마섬의 도주에게 그들의 철수를
요구하였다. 그것에 불만을 품은 일본인들은 쓰시마 도주의 군사 지원을
받아 폭동을 일으켰고, 한때는 제포, 부산포를 함락시킬 계제(階梯)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관군(官軍)의 토벌(討伐)로 그들은 크게 패하여 물러간 이후
일본인과의 교역을 금하였는데, 그 뒤 대마도주(對馬島主)의 간청(懇請)으로 다시 임신약조(壬申約條, 1512년(중종 7))를
맺고 제포 항구만 열어 교역을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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