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허선문(宣文)은 가락국(駕洛國) 수로왕비(首露王妃) 보주태후(普州太后)
허씨의 30세손으로 고려조 대광공(大匡公)이었다. 대대로 공암촌[공암현(孔巖縣,
공암은 양천의 다른 이름)]에
살면서 농사에 힘을 써 거부가 되었다. 마침 고려 태조가 후백제
견훤을 정벌할 때 군량이 부족하여였는데 군량을 보급하여 군의 사기를
회복케 함으로서 후백제 견훤을 대파하였다. 태조가 그 공을 가상히
여겨 가부(假父)라 칭하고 공암을 식읍으로 하사하였다. 이로 인하여 본관을 공암(孔巖,
양천(陽川))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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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허원(元) : 허선문의 손자, 고려 목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검교예빈성경에 올랐다. 허정(正)
: 예부상서를 지낸 후 태자태보에
이르었다. 허재(載) : 정의 아들, 문하시중 평장사를 지냈다.
허공(珙) :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한 후 1284년(충렬왕 10)수국사를 겸하여 원부 등과 함께 [고금록]을
찬술하고 첨의중찬에 올랐다.
허숭(嵩) : 검교정승
허금(錦) :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 교서교감, 예의정랑을
지내고, 우왕 때 좌상시를거쳐 전리판서에 올랐다. 시호는 문정.
허손(蓀) : 조선에서
재령군수이었다. 허종(琮) :
허손의 아들, 우의정
허침(琛) : 허손의 아들,
좌의정 허세린(許世麟) : 청백리 허한(瀚) : 서화가, 군자감 부봉사
허엽(曄) : 허한의 아들, 서경덕의 문하에서 글을 배워 여러 관직을 역임한 후 선조 때 동서분당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인의 영수가 되어 조광조의 신원과 허자, 구수담 등의 무죄를 논하다가 한때 파직되기도 했으나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허잠(潛) : 청백리 허준(浚)
: 동의보감
허균(筠) : 허엽의 아들,
진주부사를 지냈다.
허목(穆) : 숙종 때 우의정 허적(積) : 영의정 허원(遠)
: 과학자이다 허숙(俶)
: 숙종 때 화가이다. 허계(啓) : 금위대장지내고,
판의금부사, 도총관을 역임했다. 시호는 효민. 허재욱(在旭)
: 한말의 독립운동가, 의병대장이었다, 허정(晶)
: 청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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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人口) ]
27,338가구, 114,866명 (1085년) 40,260가구,
130,286명. (2000년 통계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