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온서주부(司醞署主簿) 허은(許誾)의 아들이다
1528년(중종 23) 10월 중종이 영릉(英陵)에 행차하여
문.무과시가(文.武科試) 있어 이때 무과에 합격하였다.
1548년(명종 3)에 강진(康津)현감과 1552년(명종 7) 청도(淸道)군수로 있으면서
흉년으로 고생하는 군민 구휼(救恤)에 진력(盡力)한 공로로
당상(堂上)으로 특승되어 김해부사(金海府使)로 나갔다.
부사가 되어서도 정사(政事)에 청렴(淸廉)하기가 한결 같았다.
1556년(명종 11) 경상우도 수군절도사(慶尙右道水軍節度使)로 전임하게 되자
관민(官民)이 모두 나와 영문앞에 모여 3일간이나 횃불을 밝히고 유임(留任)을 호소(呼訴)하며
전임을 아쉬워 하였다.
1558년(명종 13) 길주목사(吉州牧使), 1561년(명종
16) 청홍도수사(淸洪道水使),
1562년(명종 17) 청홍도병사(淸洪道兵使)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1564년(명종 19)에는 양주목사(楊州牧使)를 자청하였다.
그해 8월에 모친상을 당하여 복상(服喪)중 경상좌도병사(慶尙左道兵使)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566년(명종 21)에는 회령부사(會寧府使), 1567년(명종
22)에 함북병사(咸北兵使)로
전임될 즈음에 이르러 돌아가신 아버지, 조부, 증조(曾祖)까지 추증(追贈)하는 영광을 얻어
충(忠)과 효(孝)를 다하였다.
공은 평생을 진실로 옳고 곧은 적선(積善)을 다한 청백리(淸白吏)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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