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김익(熤)의 아들이다. 1774년(영조 50) 진사가 되고, 그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1년(정조 5) 검열(檢閱)로서 "이문원강의(摛文院講義)"를 편집해서 왕에게 바치고, 규장각직각(奎章閣直閣)·직제학(直提學)·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799년 진하 겸 사은사(進賀兼謝恩使)로 청(淸)나라에 다녀오고, 다음해 규장각제학(奎章閣提學)·의금부판사(義禁府判事)가 되었다.
1800년(순조 즉위) 실록청지사(實錄廳知事)로서 "정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805년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취임을 거절하여 재령에 부처(付處)되었고 이듬해 석방되었다. 1807년 우의정에 다시 임명되고, 다음해 좌의정에 올랐으며, 1812년 영의정이 되었다.
1818년에 중추부판사(中樞府判事)가 되었다가 뒤에
다시 영의정을 지냈으며, 1823년 중추부영사(中樞府領事)가 되었다.
순조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문집에 "해석유고(海石遺稿)", "해석일록(海石日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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