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
김방경(金方慶)의 후손.
키가 8척에 힘이 세어 장사로 알려졌다. 1604년(선조
37) 무과에 급제, 말직에서 전전하다가 병조판서 박승종(朴承宗)의 추천으로
선전관이 되었으나 이듬해 파직, 1608년 박승종(朴承宗)이 전라도 관찰사가 되자
그 비장(裨將)으로 기용되었다. 1610년 다시 선전관, 이어 경원 판관,
도총부 경력, 삼수군수(三水郡守), 북우후 등을 역임했다. 1618년(광해 10)
건주위(建州衛)를 치기 위해 명나라에서 원병 요청이 있자, 선천 군수로서 조방장이
되어 부원수 김경서(金景瑞)
휘하에 들어갔다. 이듬해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을 따라 좌영장(左營將)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넜다. 3월 명나라 도독 유정(劉挺)이
명군 3만을 거느리고 부차령(富車嶺)에서 패전하여 자결하자, 조선군이 6만의
적군과 대전케 되었으나 전세가 불리해져 우영장 이일원(李一元)은 달아났고,
그는 3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고군 분투 끝에 전사하고 휘하 군사는 괴멸했다.
1620년(광해 12) 명나라 신종(神宗)에 의해 요동백(遼東伯)으로 추봉(追封)됨과 동시,
처자에게는 은(銀)이 하사되었다.
철원의 포충사(褒忠祠), 종성의 행영사, 경원의
충렬사, 선천의 의열사(義烈祠)에 제향,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