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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 강씨 (載寧
康氏) |
시조(始祖) : 강득룡(康得龍) |
시조 강득룡(得龍)은 신천강씨(信川康氏)의 시조 강호경(康虎景)의 8세손이다.
그는 고려 공민왕
때 삼사우사(三司右使)를 지내다가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뜻을 품고
관악산 의상대에 올라 송경(개성(開城))을 향해 통곡하니 이때부터
이곳은 연주대라 불리웠고, 그후 태조가 그를 안릉부원군(安陵府院君, 안릉은
재령의 고호)에 봉하고 안정공(安靖公)이란 시호를 내렸으며, 후손이
재령(載寧)으로 낙향하여 살면서 재령(載寧)을 본관으로
삼았다.
다른 문헌에서는... . 오늘날의
모든 강(康)씨는 곧 강지연(康之淵)의 후손으로서, 곡산강씨(谷山康씨)의 중조(中祖) 강서(康庶, 象山伯)는 육세(六世), 재령강씨(載寧康氏)의 중조(中祖)인 강득룡(康得龍)은 이태조(李太祖)의
계비(繼妃)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친오라버니이다.
그는 고려 공민왕조(恭愍王朝)에
삼사우사(三司右使)를 지냈으나 조선(朝鮮)이 건국되면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뜻을 품고 관악에 은거,
연주암(戀主庵)에 살면서 매일같이
연주대(戀主臺)에 올라 송도(松都)를 바라보며 통곡하였다고 한다. 후에 이태조(李太祖)는 그를 안릉부원군(安陵府院君, 安陵은 載寧의 옛 이름)에 봉하였고, 안정공(安靖公)이란 시호(諡號)를 내렸고, 그의 후손은 재령(載寧)에 관적하였다. 그 밖의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으며, 현근대(現近代)에도 관리,
교육가, 산업가들이 왕성히 번창하고 있다. 이는 관악산 밑에 자리잡은 안정공(安靖公) 강득룡(康得龍)의 충절에 기인하는 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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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파(分派), 계파(系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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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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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성촌(集姓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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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지 연혁(本貫地沿革) ] 황해
곡산(谷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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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렬표(行列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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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人口) ]
-명. (1985년) 969가구,
3,053명. (2000년 통계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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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종회 및 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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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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