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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 동씨 (廣川 董氏) |
시조(始祖) : 동중서(董仲舒) |
시조 동중서(仲舒)는 중국 한나라 무왕 때의
사람이나 그후의 세대는 알 수 없다. 후손인 동박소에게 3형제(계선,
승선, 인선)가 있었는데 동계선은 중국에서 벼슬을 하였고, 동승선(承宣)은
명나라 때에 안위사로 우리나라에 와서 영천군에 봉해져서 영천군에
살게 되었으며, 동인선(印宣)은 아버지의 친구인 서달이 태조 이성계에게
천거하여 지휘사가 되어 태조를 따라 전공을 세워 이부상서가 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동중서(仲舒)를 시조로하고 동승선(承宣)과 동인선(印宣)을
1세조로 하고 있다. 시조 동중서(董仲舒)의 출생지인
중국의 광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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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파(分派), 계파(系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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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인물(代表的人物) ] 동중서(仲舒)
: 영천군, 동방의 거유(巨孺) 동인선(印宣) :
이부상서 동덕란(德蘭) : 동승선(承宣)의 손자,
공조시랑(工曹侍郞)을 지냈다. 동보하(寶夏), 동상하(尙夏)
: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역임하였다. 동학정(學政)
: 동인선의
현손, 태자태보(太子太保)에 올랐다. 동창순(昌順) : 동일원(一元)의 아들, 안주 목사(安州牧使)를 지냈으며, 동한필(漢弼)
: 대순(大順)의
맏아들, 인조조(仁祖朝)에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있다가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청(淸)나라 와의 굴욕적인 화의(和議)가 성립되자
비분강개하며 벼슬을 버리고 지리산(智異山)에 은거한 후 누차에 걸친 조정의 부름에도 불응하며 자손들이 벼슬길에 나가지 말도록
유언(遺言)했다고 한다. 동응란(應蘭) : 동희방(希芳)의 아들,
1624년(인조 2) 부원수(副元帥)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키자
향병(鄕兵)을 일으켜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진무원종일등공신(振武原從一等功臣)에 책록되고, 우봉 현감(牛峰縣監)을 거쳐
갑산부사(甲山府使)로 나갔다. 동혜진(惠震) : 용양위 부호군(龍 衛副護軍)을 지냈다.
동정란(廷蘭) :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을 역임하였다. 동하욱(夏旭)
: 공조 참판(工曹參判)에 올랐다. 동희경(禧景)
: 부호군(副護軍)
동기연(基衍) : 부사(府使) 동진호(鎭鎬)
: 현감(縣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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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계 계보도(上契系譜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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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성촌(集成村) ]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정동양리 함북
명천군 하가면 성구동 함북 명천군 하가면 둔전동 함북
단천군 복귀면 용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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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지 연혁(本貫地沿革) ] 광천(廣川)
- 중국(中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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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렬표(行列表) ]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만(萬) |
종(宗) |
진(進) |
병(秉) |
목(穆) 모(模) |
희(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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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人口) ]
3,850명. (1985년) 4,130명. (2000년 통계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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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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