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시대(三韓時代)에 진한(辰韓)에 속했다.
470년 고구려(高句麗) 때에는 주부토군(主夫吐郡)이라부리우다
757년 통일신라(統一新羅) 때 와서 장제군(長堤郡)으로 개칭하여 그 관할 하에 4개 현(顯)을 두었다.
고려(高麗) 성종 때 수주(樹州)·안남(安南)·계양(桂陽)·길주(吉主)
등으로 고쳐 불렀다. 문종 때에 안남(安南) 또는 부평(富平)이라 불렀다.
1310년(충선왕 2)에 지금의 부평(富平)이 되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에 도호부(都護府)가 되었다.
1914년 3월 군부(郡府) 폐합령에 따라 넓은 지역이 인천부(仁川府)에 속하게 되었고, 나머지 지역과 주변 일부지역을 합쳐서 부천군으로 발족하였다.
그후 인천과 서울의 팽창에 따라 주읍(主邑)인 부평이 인천에, 9개 리(里)가 서울에 편입되어 소사(素砂) 1읍과 9면을 관할 하에 두었다가
1945년 10월 인천부를 제물포시 개칭, 제물포시 부평·서곳지청 설치 1948년
11월 인천시로 되고 부평·서곳지청을 출장소로 환원 1968년
1월 부평·서곳출장소를 통합 →"북구"로 명명 1981년
7월 인천직할시로 승격 1988년 1월 서구 분구 1989년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 일원을 북구로 편입 1995년 1월
인천직할시가 인천광역시로 명칭이 변경 1995년 3월 계양구가 분구(11개동)되고, "북구"의 명칭을 "부평구(21개동)"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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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동 [ 부평1동, 부평2동, 부평3동, 부평4동, 부평5동, 부평6동, 산곡1동, 산곡2동, 산곡3동, 산곡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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