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을사조약이 채결된 후 옥성, 홍명, 오봉, 선화,
남제등 여러 학교를 설립하여 청년들에게 애국심을 고취하는 한편 서북학회에
가담,애국운동과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1919년 3ㆍ1운동에 참가한 뒤에 만주 안동의 동지들과 연락하며 '독립신보'를
발간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10여 차례 임시정부에 송금했다.
그 후 임시정부 연통제의 용천군 참사로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피체, 평양옥에 복역했다.
1923년 선교사 맥큔의 요청으로 선천의 신성중학교ㆍ보성역학교의 교원이
되어 학생의 애국정신을 함양했고, 해방 후에는 반탁운동에 참가했으며,
'대한독립사'를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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