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씨는 중국 무위에 연원을 두고, 명(明)나라 신종(神宗)
때 추밀원사, 병부상서, 태자소부, 문연각 태학사 등을 지낸 가유약(維鑰, 자는 무편,
호는 지백당)을 시조로 하고 있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중국 소주사람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중국
신종의 명을 받아 계요안찰사로 원병을 이끌고 우리라에 와서 안주
등지의 싸움에서 공(功)을 세우고 돌아 갔다가, 정유재란 때 아들 상과 손자
가침이 함께 조선에 다시와서 남원 등지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으며,
1600년(선조 33) 부산 싸움에서 용전하다가 상과 함께 전사하였다.
그의 손자 가침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시신을
거두고 경남 울산 서생긴 도독동에 무덤을 만들고, 전쟁이 끝난
후 안동권씨 순의 딸과 혼인하여 울산에 살면서 우리나라 가씨의
뿌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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